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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에 두 아파트 분양?…주민들 ‘날벼락’
 
신한국뉴스 기사입력  2015/04/30 [11:12]

내 집 한 칸 마련하는 게 이렇게 힘든 겁니까?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겁니까?’ 부산에서 만난 국정옥씨는 저를 붙잡고 한참을 호소했습니다. 국정옥씨는 결혼한 지 20년이 됐지만, 아직 ‘내 집’이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가격에, 살기 좋은 동네에 가족들과 함께 노후를 꾸려갈 집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부산 지역의 아파트 평당 분양가는 천 여 만원. 그런데 평당 분양가가 7백여만원인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를 발견했습니다. 조합업무대행비와 계약금을 내고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시중 분양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국정옥씨는 신중한 성격이었습니다. 이리 저리 꼼꼼하게 따져봤습니다. 이 조합이 정식 인가를 받은 조합인지부터 살펴봤습니다. 아파트 홍보관이 지어져있고 모델하우스도 있기는 했지만, 아직 정식 인가를 받은 조합은 아니었습니다. 조합이 인가를 받지 못하면 사업 자체가 안 될 가능성도 있으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합 설립 인가를 받으려면 분양 예정 세대수의 절반이 넘는 조합원을 모집해야 하고, 토지소유주 80% 이상의 동의도 받아야합니다. 국정옥씨는 몇 개월을 기다리며 이 조합의 사업 추진 실현 가능성을 살폈습니다. 몇 달 뒤, 해당 조합은 전체 예정 세대수의 절반이 넘는 5백여명의 조합원을 모집했습니다. 국정옥씨는 비로소 안심하고 조합에 가입했습니다. 내 집을 갖게 될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말입니다.
■ 내가 분양받은 아파트가 들어설 그 땅에 또 다른 아파트가 분양되고 있다?

하지만 국정옥씨의 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물거품이 됐습니다. 지자체가 국씨가 가입한 지역주택조합에 대한 승인을 반려했기 때문입니다. 해당 건물의 층수가 제한 기준을 넘었고, 토지소유주 동의 비율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조합원들은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의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기막힌 사실은 또 다른 곳에서 벌어졌습니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를 분양한다던 바로 그 곳에, 또 다른 지역주택조합이 자신들도 아파트를 분양한다며 홍보관을 건설하고 조합원 모집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한 지역을 대상으로 두 개의 지역주택조합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 조합원들은 경악했습니다. 지자체를 상대로 이게 무슨일이냐며 격렬하게 항의했습니다.

지자체는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자신들의 입장을 해명했습니다. 아파트 홍보관은 가설 건축물에 들어가기 때문에 건설이 허가사항이 아니라 신고사항인 만큼, 요건을 맞춰오면 지자체는 건축 허가를 내줘야 한다는 겁니다. 게다가 지역주택조합이라는 것이 추진위원회 단계에서는 법적인 규제를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서, 두 개의 지역주택조합 대행업체가 한 지역을 두고 조합원을 모집하고 있다고 해서 조합추진위가 활동하는 것을 지자체가 규제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조합원들은 지자체가 두 개의 조합이 조합원 모집 경쟁을 벌이는 상황을 방관했다고 분노를 금치 못하고, 지자체는 이런 주민들의 반응에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 고 말하는 상황. 부산시 해운대구 재송동 일대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 주택 공동구매 제도의 허점

지역주택조합은 주민들이 조합을 만들어 땅을 사고, 시공사를 선정해 집을 짓는 일종의 주택 공동 구매제도입니다. 1980년대 전국 각지에서 활발하게 사업이 진행된 뒤 잠시 사업이 주춤해졌습니다. 그러다 최근에는 재개발, 재건축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가 경기 침체로 사업이 지지부진해진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주택조합이 대안으로 떠올라 다시 성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7년 동안 정부로부터 지역주택조합 설립인가를 받은 조합은 모두 120여개가 넘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전국에 아파트 5만 8천여채를 건설하는 규모입니다. 지역 주택조합을 이용해 집을 마련하려는 서민들이 계속 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주택법에 나와있는 지역주택조합 관련 규정이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첫째, 지역주택조합 설립 전 단계에서 업무 대행을 맡고 있는 업체들이 있는 데 그 업체들의 자격 요건을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이 마땅치 않아서 함량 미달의 업체들이 난립할 수 있다는 점. 둘째, 조합설립추진위원회 단계에서 사업이 잘못됐을 경우 조합원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 셋째, 주택법에는 조합 설립 이후에 시공자의 사유로 사업이 중단됐을 경우, 조합원에게 배상의 책임이 있다고 되어 있지만, ‘시공자 귀책사유’도 매우 애매하게 규정되어 있다는 점. 등을 지적했습니다. 이런 문제는 속속 현실이 되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 미뤄지는 공사. 멀어지는 내 집 마련의 꿈

20개월된 아이, 아내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이수한 씨를 만났습니다. 갈수록 오르는 전세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워진 수한씨는 지난해 8월 김포 걸포 지구에 지역주택조합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이미 조합으로 승인받은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했기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합이 설립 인가를 받고 시공사를 선정하고 난 뒤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해당 시공사인 건설업체 측이 아직 토지 소유권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며 사업 시행에 난색을 표했기 때문입니다.

김포 걸포 지구는 공매로 나온 땅이었습니다. 조합원들이 땅의 소유권을 갖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 노력은 실패했습니다. 마지막 단계에서 입찰에 참여한 현재의 시공사, 00건설이 최종적으로 땅의 소유권을 확보했습니니다. 조합원들은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시공사가 선정됐으니 금방 공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꿈에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시공사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땅 소유권의 일부를 가지고 있는 도시개발조합과의 협의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으니, 당장 공사를 시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공사 일정을 미뤘습니다. 조합원들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조합원들은 시공사 측이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를 분양하는 것이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민간분양으로 아파트를 전환하기 위해 꼼수를 쓰고 있다고 격하게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초 예정되어 있었던 공사 시작 시점보다 4개월이나 지났지만, 김포 걸포 지구 공사는 계속 미뤄지고 있습니다. 공사가 미뤄지니, 조합원들은 애가 탑니다. 수한씨는 올해 초 아파트 분양 예정 일정에 딱 맞춰 전셋집을 구했습니다. 사업이 더 미뤄지면, 다음에 한번 더 세 들어 살 집에 대한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그렇다고 조합에서 탈퇴할 수도 없습니다. 조합에서 탈퇴하면 조합 업무대행비는 고스란히 손해를 봐야 합니다. 수한씨는 말했습니다. ‘내 집을 마련하는 길이 이렇게 험할 줄 몰랐다.’

■ 들어가려고 하니 추가 분담금

지역주택조합을 둘러싼 소소한 분쟁은 끊이지 않습니다. 군산에서 만난 이승학씨는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3천여만원의 추가 분담금을 내고서야 입주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시공사가 이런 저런 부대비용 명목으로 추가 비용을 요구할 때마다 대출, 또 다시 대출을 반복해야했습니다. 승학씨 아내 고미옥씨는 ‘일반분양아파트에 비해 크게 저렴하지도 않다’고 푸념했습니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의 또 다른 아쉬운 점입니다.

■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저렴한 가격에 내 집 한 칸 마련해보려는’ 서민들의 꿈을 조금이나마 지켜줄 수 있을까요? 지역주택조합설립추진위원회 단계에서부터 규제를 꼼꼼히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국토해양부는 난색을 표합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여 사업을 추진해 주택을 공동구매하는 것이 지역주택조합의 취지인데, 이렇게 설립추진단계에서 규제를 강화하면 주택조합의 본래 취지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사안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주택법에는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형태라면, 사업 추진단계에서 사업이 어그러질 경우 조합에 가입한 서민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추진위원회를 만들 때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되는지, 관할 구청과 시청에 등록을 할 때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조합 승인 이전 단계에서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피해자를 줄일 수 있지 않겠냐는 겁니다.

국정옥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자님은 100% 사업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 시작하십니까? 인간이 누가 그렇습니까? 정부에서 법을 만들어놓았으니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국정옥씨의 토로가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했다가 손해를 입은 많은 서민들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취지는 좋으나, 시행 과정상에 너무 많은 허점이 있다. 전문가들의 일리있는 지적이 지역주택조합을 한 단계 더 나은 사업으로 성장하게 할 수 있을까요? 내 집 마련을 향한 서민들의 꿈이 더 나은 제도 안에서 잘 지켜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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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4/30 [11:12]  최종편집: ⓒ 경인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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