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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최고작”… ‘알제의 여인들’을 보는 냉정한 시선들
 
신한국뉴스 왕천기기자 기사입력  2015/05/20 [10:14]
경매 신기록 1960억원 그림의 그늘
《 1억7936만5000달러(약 1960억 원). 평범한 월급쟁이로서는 감 잡기 어려운 액수다. 1955년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가로 146cm, 세로 114cm 크기의 유채화 한 점이 지난주 이 금액에 거래됐다.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가 “세계
미술경매 사상 최고 금액”이라고 발표한 그림 ‘알제의 여인들’은 대번에 피카소가 남긴 가장 중요한 작품인 것처럼 시끌벅적
거론됐다. 경매회사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장엄하고 원기 왕성하며 충실하게 완성된 이 회화는 피카소가 19세기 프랑스 거장
외젠 들라크루아에게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창안해 가던 무렵의 작품”이라고 상찬했다. 수많은 언론이 이것을 그대로
받아 전했다.》
하지만 곧 싸늘한 비판이 쏟아졌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이 그림은 피카소가 남긴 것 중 최고 수준으로 분류되는 작품이 아니다. 1950년대는 작가가 자기 복제의 매너리즘에 빠져 하향세로 접어들던 시기다. 이번 경매의 ‘우스꽝스러운’ 낙찰가는 작품 가치와 상관없이 교묘하게 컬렉터를 자극한 경매회사의 홍보 전략이 거둔 성과”라고 평했다. 크리스티 측은 경매 두 달 전 “사상 최고 시작가인 1억4000만 달러에 ‘알제의 여인들’을 내놓는다”고 발표해 분위기를 띄웠다. 이번 ‘기록 경신’이 놀라운 이변이 아니라 충분히 예견됐던 결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그림을 구매한 낙찰자의 정체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는 상황 역시 구설에 올랐다. 종전까지 미술 경매 최고가 작품이었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루치안 프로이트 습작 3점’은 2년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재벌인 스티븐 윈의 전처 일레인 윈이 1억4240만 달러에 사들였다. 이번 경매에서 피카소의 작품은 전화로 참여한 응찰자에게 최종 낙찰됐고 그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가디언은 “비밀을 원한 그 컬렉터는 결국 누구에게도 이 그림을 보여줄 수 없다. 그 순간 비밀이 깨질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만 보기 위해 이 그림을 그 가격에 사 간 까닭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과열된 미술시장의 거품을 경고하는 적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분석도 잇달아 나왔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예견해 ‘닥터 둠’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크리스티 경매 바로 이튿날 미국 CNBC방송에 출연해 “부유층의 돈세탁과 탈세에 이용되고 있는 미술시장에 상품(작품)의 가격 형성을 뒷받침하는 근거(펀더멘털)가 없음을 보여준 사례다. 오직 유행에 대한 열광만이 이 시장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데이터섹션 ‘업샷(The Upshot)’은 범주를 넓혀 “세계 경제 전반에 뿌리 깊게 형성된 극심한 부의 편중 현상을 확인시켜 준다”고 분석했다. 그림 한 점에 쓸 수 있는 돈의 상한을 전 재산의 1%라고 가정할 때 ‘알제의 여인들’을 구매할 수 있는 이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 100대 억만장자’ 중 단 50명뿐이며, 이들이 원하는 것은 작품 투자로 인한 수익이 아니라 ‘빈부격차의 심화와 가속화’라는 설명이다.

파이낸셜타임스 역시 “미술시장에서의 가격은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이야기한 사회계층 간의 극단적인 소득불평등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전했다. 작품 가치와 연결 짓기 어려운 이번 경매 신기록은 주식과 채권시장 전망이 밝지 않은 가운데 대체시장으로 몰린 잉여자본의 힘이 빚어낸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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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5/20 [10:14]  최종편집: ⓒ 경인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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